도서명비텐베르크의 마르틴 루터 - 마르틴 루터 생애의 여행
저자/출판사마르틴 트로이/한정애/컨콜디아사
ISBN9788939101371
크기.mm
쪽수114p
제품 구성낱권
출간일2017-03-15
목차 또는 책소개상세정보참조


  기본상품명 비텐베르크의 마르틴 루터 - 마르틴 루터 생애의 여행
  출판사 컨콜디아사
  저자/역자 마르틴 트로이/한정애
  ISBN 978-89-391-0137-1
  출시일 2017-03-15
  크기/쪽수 114p

  
 
책 소개
 
마르틴 루터 – 생애의 여행
 
<비텐베르크의 마르틴 루터 - 생애의 여행 (Martin Luther in Wittenberg: Ein biographischer Rundgang)>는 루터 생애와 루터 생가를 결합한 화보집이자 루터 안내서이다.
원래 검은 수도원 건물이었던 루터 생가는 1883년부터 종교개혁 역사박물관으로 사용되었다. <비텐베르크의 마르틴 루터>는 여기서 상설 운영되는 “비텐베르크의 마르틴 루터 – 생애의 여행”라는 제목의 상설 전시회 안내 자료이고, 따라서 구십여 개가 훨씬 넘는 루터 관련 이미지를 제공한다. 저자 마르틴 트로이(Martin Treu) 박사는 비텐베르크 루터박물관 관장과 루터기념재단 단장을 역임한 바 있다.
또한 <비텐베르크의 마르틴 루터>는 루터의 생애와 사상에 대한 간결하고 정돈된 입문서이기도 하다. 루터의 위로 개념으로 논문을 쓰고, 많은 루터 연구서를 쓴 바 있는 세계적인 루터 연구자인 마르틴 트로이는 루터에 대한 최신 연구 결과를 평이한 언어로 풀어서 우리에게 차분하게 들려준다.
루터 전문가의 친절하고 정확한 안내를 따라 루터 생가 안에서 재구성된 그의 생애를 따라가 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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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리말」 -
 
1883년에 예전의 성 아우구스티누스 은둔자 수도회의 검은 수도원에 종교개혁 역사박물관이 개관되었을 때 루터 강당이라는 애매한 명칭이 붙었다. 그 이름이 특히 시대정신을 반영했다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여러 어려움을 극복하고, 점차 자리를 잡았다. 책임자들은 2002년 전람회의 재편성에 앞서 학문적 자문 기관의 제안에 따라 “루터의 집”이라는 명칭으로 바꿀 것을 결의했다. 이 명칭이야말로 이 비텐베르크의 독특한 장소를 잘 표현할 수 있다고 보인다. 마틴 루터의 인간과 업적이 이 집에서 불가분리하게 묶여 있기 때문이다.
“비텐베르크의 마르틴 루터 - 생애의 여행” 전람회는 모든 방문객이 루터 저택의 여러 공간이나 소장품과 첫 만남을 갖게 해줄 것이다. 이 전시회는 완전한 루터의 생애나 16세기 독일 프로테스탄티즘의 역사를 제시할 수 없으며 또한 그것을 의도하지도 않는다. 대신에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는 방문객이 더 자세하게 알아볼 수 있도록 전람회의 다른 부분들에 주의를 환기시켜야 할 것이다: “마르틴 루터의 자택 - 루터 가정의 일상생활”, “설교·선전·논쟁 - 매체 혁명으로서의 종교개혁”, “루터 상(像)과 루터 그림 - 1546년부터 1983까지의 수용과 영향사”, “보고(寶庫) - 지난 9세기 동안의 귀중품”이 그것이다.
 
 
■ 저자 소개
 
▪ 마르틴 트로이
마르틴 트로이(Martin Treu) 박사는 1982년에 「루터의 위로 개념의 현대적 의미 Die gegenwärtige Bedeutung von Luthers Trostbegriff」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할레-비텐베르크대학교(Martin-Luther-Universität in Halle an der Saale)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1991-1997년에 비텐베르크 루터박물관(der Lutherhalle in Wittenberg) 관장을, 또한 1998-2012년에 루터기념재단(Stiftung Luthergedenkstätten in Sachsen-Anhalt) 단장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 – 마르틴 루터와 독일의 종교개혁(Am Anfang war das Wort. Martin Luther und die Reformation in Europa)>, <비텐베르크에서 유럽으로 – 종교개혁의 간략한 역사(Von Wittenberg nach Europa, Eine kurze Geschichte der Reformation)>, <카타리나 폰 보라 - 그녀의 생애상(象) (Katharina von Bora, Bilder aus ihrem Leben)>, <마르틴 루터와 토르가우(Martin Luther und Torgau)>, <비텐베르크의 루터 박물관(Die Lutherhalle Wittenberg)> 등 다수가 있다.
 
 
■ 목 차
 
▪ 머리말 / 7
▪ 마르틴 루터의 비텐베르크까지의 경로 / 9
▪ 비텐베르크 - 대학 도시 및 선거후(選擧侯) 도시 / 13
▪ 루터의 종교개혁적 발견 / 21
▪ 95개조 논제 - 종교개혁의 시초들 / 25
▪ 수도원의 식당 / 33
▪ 아우그스부르크 심문과 라이프치히 논쟁 / 37
▪ 주요 종교개혁적 저서들과 교회법 소각 / 43
▪ 보름스 - 황제와 제국 앞에서 / 47
▪ 바르트부르크 성에서의 루터 / 53
▪ 비텐베르크 운동과 루터의 복귀 / 57
▪ 교회공동체의 개혁 / 63
▪ 농민 반란과 토마스 뮌처 / 67
▪ 대 강의실 / 73
▪ 결혼과 가족 / 75
▪ 루터의 거실 / 87
▪ 루터의 친구들 / 89
▪ 루터의 종교개혁에의 공헌 / 93
▪ 루터의 죽음과 그의 마지막 유산 / 97
▪ 각주 / 104
▪ 색인 목록 / 105
▪ 사진 제공 / 114
 
■ 본문 속으로
 
▪ 루터는 1513년에서 1518년 사이에 시편들로 시작하여 몇 권의 성경에 대해 네 차례에 걸친 강의를 했다. 그는 마침내 로마서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선물로 주어지는 ‘의’에 대한 믿음을 통해서만 구원받을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이런 겉보기에 추상적인 문장이 장차 근간을 뒤집어엎는 것으로 입증되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안에서 선물로 주어진 구원으로 의 집중과 함께 모든 인간적 경건의 노력이 그 가치를 잃었기 때문이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믿는 자에게 구원을 준다. (21쪽)
 
▪ “교회의 참된 보화는 하나님의 영광과 은혜의 가장 거룩한 복음이다.” (25쪽)
 
▪ 면죄부(免罪符)는 중세 전성기에 신자의 죄에 부과된 벌을 면하기 위한 재정적 보상으로 생겨났다. 예를 들면, 로마 성지 순례의 비용 지불은 성지 순례 그 자체를 대체할 수 있었다. 면죄부는 르네상스 시대의 교황 정치와 함께 점점 더 늘어나는 로마 교회의 자금 수요를 위한 자금 조달 도구로 발전했다. (25쪽)
 
▪ 친구들의 격려와 반대자들의 비판은 루터에게 강한 동기를 불어 넣었다. 그는 단기간에 그의 종교개혁적 기본 구상으로 이해될 만 한 팸플릿을 연달아 출판했다. (43쪽)
 
▪ 루터는 개신교 찬송가를 도입함으로써 평신도들에게 예배 행위에 있어서 한 목소리를 부여했다. 그는 기존 전문 합창단들을 폐지해야 한다고 보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중이 적극적인 역할을 맡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중략] 개신교 찬송가가 종교개혁의 확장과 승리에 있어서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루터는 1523년부터 그러한 찬송을 작사하며 부분적으로는 작곡도 했다. (65쪽)
 
▪ 예배 개혁에는 사회와 학교 개혁이 따라왔다. 루터는 근간이 되는 저서“매매 행위와 폭리에 관하여”를 통해 사업의 관습을 바꾸고자 하였다. [중략]
교회의 개혁이 직접적인 경제적 효과를 가졌다. 제발트 베함이 이것을 그의 목판화‘로마 교회 지지자들의 루터에 대한 불평’에서 풍자적으로 그렸다. [중략] 또한 베함은‘수도사의 사치스런 삶에 관한 알레고리’를 만들었다. [중략]
루터의 학교 개혁은 그의 경제 개혁보다 훨씬 성공적이었다. 그의 저서 “기독교 학교를 세우고 유지할 독일의 모든 도시의 시 의원들에게”가 마침내 독일 전국의 초등학교 체계로 이어져야 하는 발전의 기초로서 입증되었다. (65쪽)
 
▪ 루터의 적들에게 있어서, 그의 결혼은 스캔들이었다. 심지어 그의 친구들도 비판적이었고, 특히 필립 멜란히톤이 그러했다. (76쪽)
 
▪ 마르틴 루터는 책상에서 오랜 시간 일을 했지만, 그에 못지않게 교제를 좋아했다. 그는 처음에는 그의 수도회 형제들로, 다음에는 가장(家長)으로서 자녀들과 친구들에 둘러싸였다. 루터에게 있어서 이들은 기독교 공동체의 핵심이었다. 그들은 함께 기도하고 찬송했다. 그는 또한 여기에서 시험 속의 위로도 찾았다. (89쪽)
 
▪ “그리스도를 믿으라. 그리고 하나님이 너를 부르신 삶의 자리에서 너의 의무를 수행하라.” (93쪽)
 
▪ “우리는 거지다. 이것은 진실이다.” (97쪽)
 
▪ 루터의 영속적인 유산은, 그의 사후까지 남아 아직도 영향을 미치는 저서들이다. 그 중 첫 번째로 성서 번역이 언급 되어야 한다. 이것만큼 독일어 발전에 영향을 끼친 책이 없다.
루터의 번역으로 1522년에 신약 성서가 번역된 이후 1534년에 성서 전체의 번역이 처음으로 인쇄될 때까지 12년이 더 걸렸다. 이는 종교개혁의 “베스트셀러”로 발전했으며 서로 다른 개정판들이 나왔고, 지금까지도 개신교 내에서 사용되고 있다.
두 번째 자리는 루터의 찬송을 위한 것이다. 인쇄업자의 이름을 딴 클루크 찬송가에 루터의 가장 유명한 찬송 “내 주는 강한 성이요”가 처음 등장한다. 비싼 성서에 비해 작은 찬송가는 저렴했다. 그래서 평민들도 잃어버리거나 파괴될 경우에 어렵지 않게 새 것을 구입할 수 있었다. (100쪽)